목록좋은 시 감상 (532)
오선민 시인의 서재입니다
그녀의 전생이 궁금하다/이병관 기 드센 장닭이었을 거야 어딜 가든 졸개 여럿 달고 다니면서 웬간한 수컷 콕콕 몇 번 쪼아 단박에 요절내 버리느 걸 보면 아니면 늑대였지 싶어 한 번 먹이로 지목되면 밤잠 안 자고 독하게 나들목 지켜 거의 놓친 적이 없다고 소문 쫙 퍼졌어 공작이었는지도 몰라 걸..
조개/강인한 산다는 것은 맨몸으로 소금밭을 밀어가는 일이었다. 캄캄한 뻘흙 속 진실은 눈을 떠도 보이지 않는다. 발가벗은 몸뚱이에 머언 먼 파도 소리 새겨져 갈 때 흐린 물살에 쓸려 슬픔도 저와 같이 풀려 가는지. 아니다! 아니다! 소리치는 혀에 꽂히는 모래알 모래알의 아픔이 살을 찢는다. 언제..
운주사(雲住寺)에 갔더니/강인한 어지러운 세상이 어제 오늘뿐이 아니었을 그런 까마득한 천 년의 어둠 저편에서 쨍쨍한 햇살을 쪼으는 소리 소리. -―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등성이에 골짜기에 논두렁에 쩌렁쩌렁 울리는 돌의 울음, 울음 소리 일천의 돌탑이 솟고 일천의 돌부처가 웃고. 세상 시름 ..
비어록(蜚語綠)/강인한 - 아아 역사여·3 백성들이여, 짐의 백성들이여 그대들 대대손손의 쓰라린 눈물을 건지기 위하여 그대들 식솔들의 주림과 헐벗음을 낱낱이 덜기 위하여 홀로 만 근의 어둠에 시달리며 그대들이 볼 수 없는 외로운 북쪽에서 저 소금 덩어리 같은 큰 별과는 가장 가까운 자리 그곳..
이성계에게/강인한 - 아아 역사여.4 1909년 10월 26일 그대는 알까 몰라 대륙에 불던 바람 피 묻은 바람 소리를, 아, 성계(成桂)여 그대의 회군은 잘못이었어. 압록강을 뒤돌아 건너오는 그대의 칼 녹슨 칼로 가리킨 것은 끝끝내 대의(大義)였던가 죽어도 명분(名分)이었던가. 1909년 10월 26일 차가운 동풍이 ..
김부식에게/강인한 - 아아 역사여·2 눈 내리는 밤을 마주하여 그대를 생각한다. 김부식(金富軾) 그대의 붓 한 자루가 지워버린 대륙의 함성을 오늘 다시 생각한다. 그대가 물려준 단벌 옷을 벗어들고 아득히 귀기울여보면 저 눈 속을 떠나는 고려 사신들 꾸부린 행렬 위로 겨울 까마귀 낮게 날고 인삼..
김유신에게/강인한 - 아아 역사여·1 유신(庾信), 그대의 칼은 잘못이었어 갈대 숲에서 땔거리를 자르거나 낙동강에서 은어 회나 칠 걸 정말 잘못이었어 칼은 누가 쥐는가 누가 칼을 쥐어야 하는가를 그대는 모르고 있었어. 저 푸르고 기름진 대륙에의 꿈을 무참하게 베어버린 유신(庾信), 그대의 칼은 ..
신라의 말/강인한 알에서 깨어난 바다가 뒤척였다. 바위 틈으로 수줍은 등불이 새어나오고 먼 데서 늙은 안개도 찾아와 둥근 밤을 이루었다. 끊어진 길가에 꽃이 피고 머리털처럼 부드럽게 바람이 불어온 그때 어둠의 뒤에서 캄캄한 피를 흘리며 백마 한 필이 날카롭게 달려왔다. 목을 잃고 나타난 김..
강인한의 ‘빈 손의 기억’ 감상 / 윤성택 빈 손의 기억 강인한 내가 가만히 손에 집어 든 이 돌을 낳은 것은 강물이었으리 둥글고 납작한 이 돌에서 어떤 마음이 읽힌다 견고한 어둠 속에서 파닥거리는 알 수 없는 비상의 힘을 나는 느낀다 내 손 안에서 숨쉬는 알 둥우리에서 막 꺼낸 피 묻은 달걀처럼..